러시아 모스크바 레베데프 물리학 연구소(Lebedev Physics Institute)는 7명의 과학자들이 노벨상을 수상한 국가 연구기관이다. 소련의 첫 핵폭탄 실험, 수소폭탄 제조법 고안 등 수십년간 러시아 과학을 주도해왔다.

최근 뉴욕타임즈에 따르면 레베데프 연구소 창립 85주년을 앞두고 복면을 한 무장 보안 요원들이 들이닥쳤다. 보안 요원들은 연구소 소장 니콜라이 N. 콜라체프스키의 사무실을 수색, 군용 유리 수출 의혹에 대해 6시간 동안 그를 심문했다.

이 작전은 러시아 지식인들 사이에서 보안, 정보, 군 당국자들이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표방한 정책 목표와 어긋난 행동을 하고 있다는 의혹을 낳고 있다.

러시아는 과학적 역량에도 불구하고 석유, 가스 등 천연 자원들을 수출하는 것 외에 경제를 다양화하는 데 어려움을 겪어왔다. 푸틴 대통령은 과학자들에게 실험실 연구를 상용화해 경제발전에 기여할 것을 수년간 요구해왔다.

그러나 이번 사태처럼 그렇게 하려고 시도하는 사람들은 총으로 무장한 복면 요원들에게 습격 받곤 했다. 의혹에서 결백해지더라도 수사 과정에서 이들 과학자들의 경력은 몇 달이나 몇 년씩 단절되는 경향이 있다.

2017년 시베리아에 동료 과학자들과 함께 설립한 성공적인 첨단기술업체와 관련해 구속된 전직 물리학자 드미트리 트루비친(Dmitri Trubitsyn)이 그 사례다. 이 사건은 그가 규제기관을 속이고 범죄 음모를 꾸미고 있다는 의혹을 뒷받침할 증거가 부족했기 때문에 1년여 만에 종결됐다.

푸틴 대통령은 수요일 크렘린에서 보안군 지휘관들과 만난 자리에서, 소련 시절 K.G.B의 국내 지부 F.S.B.로 알려진 연방보안국이 러시아 통합 안보에서 차지하는 역할이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법 집행 기관들 사이에 공적 보안 강화 필요성도 인정했다.

최근 레베데프 물리학 연구소에 들이닥친 보안국은 과학자들과 그들의 가족들을 동시에 급습했다. 이들의 주요 수사 대상은 레베데프 과학자의 딸이자 연구소 사무실에서 정밀 유리제품을 파는 소규모 업체를 차린 민간업체 대표인 올가 카노스카야(Olga Kanorskaya)로 보인다.

카노스카야(36)는 “수십명의 무장경찰이 이번 공습에 동원된 위협적인 수사 규모는 뻔뻔하고 어리석다”고 뉴욕타임즈 인터뷰에서 말했다. 그녀는 심문을 위해 경찰 수사관과 FSB 요원에게 위해 연행됐다.

레베데프 연구소 과학협의회는 성명을 통해 지난 주 급습으로 “법 집행 기관이 과학계의 눈에 자신들을 불신하는 엄청난 명예 훼손을 초래했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위원회는 크렘린궁이 지난해 과학연구를 위한 특별 프로그램 발표를 언급, 러시아 보안군의 행동은 문명국가에서는 상상하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한 가지 일반적인 해석은 이 사건이 러시아 과학 아카데미의 다가오는 선거와 관련된 것이며, 레베데프 물리학 연구소와 핵 연구 센터인 쿠르차토프 연구소(Kurchatov Institute) 사이의 치열한 경쟁과 관련이 있다는 것이다. 쿠르차토프는 미하일 코발취크(Mikhail V. Kovalchuk)가 이끌고 있으며, 그의 동생 유리 코발추크는 세인트페테르스크부르크의 은행가로 푸틴의 오랜 친구다.

미하일 코발취크(Mikhail Kovalchuk)와 레베데프 연구소 소장 콜라체프스키(Mr. Kolachevsky)는 모두 과학원 선거의 후보들이다. 두 과학자는 과거에도 핵 프로젝트를 상업화하려는 쿠르차토프 연구소의 계획을 놓고 충돌했다.

콜라체프스키 씨는 자신의 사무실을 급습당한 후 동료 물리학자들에게 보낸 메시지에서 선거를 언급하면서 “나는 이 두 사건을 연관시키고 싶지 않았지만, 과학계 자체는 이미 결론에 도달했다”고 말했다.

F.S.B.가 연말 전에 연례 보고서를 제출하기 위해 국방 관련 밀수 사건이 필요했을 뿐이라는 추론도 있다. 카노스카야 회사의 외국 판매에 질투심을 느낀 러시아 사업 경쟁자가 경쟁자를 물리치기 위해 보안 서비스에 뇌물을 주었다는 말도 나온다. 시베리아 트루비친(Mr. Trubitsyn) 사건은 비즈니스 경쟁자의 뇌물로 시작됐다고 알려져 있다.

이 사례는 2016년 하이테크 기업의 발전을 촉진하는 국영 벤처기업인 러스나노(Rusnano) 자회사와 손잡고 설립한 카노스카야(Ms. Kanorskaya)가 설립한 트리오펙트의 활동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카노스카야는 이후 국영기업에서 분리돼 트리옵틱스(Trioptics) 지분 35%를 매입하고 2018년에 그녀의 아버지가 일하는 레베데프 연구소 임대 사무공간으로 이사했다.

그녀는 자신의 사업이 중국에서 특수 유리를 구입해 모스크바에서 가공한 다음 기상 관측소와 기타 정밀 장비에 사용하기 위해 그것을 종종 외국 고객들에게 판매하는 것과 관련이 있다고 설명했다.

수사 중인 그녀의 회사가 중국산 유리로 한 일은 독일 고객의 사양을 충족시키기 위해 반추출 코팅제를 첨가한 것뿐이라는 것. 회사는 지난해 여름 독일 바이에른에 있는 회사에 1만5000달러 안팎의 같은 유리 4개를 문제없이 수출했다. 지난해 말, 같은 고객에게 두 개를 더 보내려 하자 모스크바에 있는 발송인은 군사적인 용도가 없는지 확인하기 위해 수출을 감시하는 정부 기관으로부터 허가를 받을 것을 제안했다.

유리가 군사용도가 아니라는 전문가의 증명서와 필요한 허가를 받은 후 FSB가 개입했다. 지난 2월 경제범죄과는 카노스카야 회사가 통제 품목의 수출을 시도하며 법을 어긴다는 ‘정보를 받았다’는 내용의 서한을 관세청에 보냈다. 러시아판 F.B.I. 조사위원회가 형사소송을 제기했다.

현재, 카노르스카야와 그녀의 아버지 세르게이, 그리고 르베데프 연구소 소장 콜라체프스키도 공식적으로 기소되지는 않았다.

7월 1일 클럽(July 1 Club)이라고 불리는 러시아 학자들과 과학자들의 비공식 협회는 이 사건을 “조작(masquerade)”이라고 비난했다. 저명한 지식인들도 SNS 등에 격앙된 메시지와 함께 관심을 표했다.

레베데프 연구소 소장 콜라체프스키는 동료 과학자들에게 보낸 성명에서 마녀사낭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연구소 급습에 3개 보안 기관에서 마스크를 한채 기관총을 지닌 요원을 대동한 30명이 동원됐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