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 동북아평화센터가 주최하고 동북아 역사재단, 도담 문화재단, ERA문화재단이 후원하는 제4차 국제학술회의 ‘샌프란시스코 체제를 넘어서’가 서울 중구 코레아나 호텔에서 열렸다.

샌프란시스코 체제란 1951년 9월 8일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48개국이 서명해 1952년 4월 28일에 발효된 샌프란시스코 조약에 의거 설계된 국제 질서를 말한다. 조약 발효로 연합군 최고사령부의 일본 군정기가 종료, 일본은 주권을 회복했다.

조약 체결 과정에서 일본의 식민지배를 받았던 한국을 비롯해 중국과 북한, 대만 등은 배제되면서 일본의 식민 지배와 전쟁에 대한 책임을 물을 기회를 차단 당했다. 일본은 미일 양국 간 안보조약으로 사실상 미국의 군사 기지화 됐다. 일본은 미국에 자국 및 인근 지역에 군사력 보유를 허용, 미국은 일본의 재무장을 지지했다.

일본 현대사 전문가로 ‘종속국가 일본’의 저자 거반 마코멕(Gavan MaCormack) 호주 국립대 교수는 기조 연설 ‘후견주의를 넘어서:샌프란시스고와 동아시아의 일본 문제’을 통해 전후 70년이 넘는 시점가지 일본은 이 체제에 종속됐다고 지적했다.

마코멕 교수는 “1945년 이후 일본 지도자들은 미국에 복종했다…2차 대전 이후 일본에서도 자각의 움직임이 있었다. 점령국이었던 미국에 노예적으로 복종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움직임이 있었다”고 말했다.

아베 신조 총리는 1993년 의회 진출 후 전후 체제 수정을 요청했다. 난징 대학살과 일본군 위안부 등 역사 왜곡을 시도, 제한없는 군대 보유 등 새로운 헌법 제정을 시도했다. 하지만 미국과의 관계에서는 속국 지위를 유지했다.

이후 일본 내 죄파 세력은 탈 미국을 시도했다. 미국 중심 일원 체제에서 다극체제로 전환을 시도했지만 워싱턴은 부정적이었다.

일본을 종속국가(Client State)로 규정한 마코멕 교수는 “일본의 좌파 우파 모두 2차 세계대전 이후 질서를 벗어나는 데 실패했다”며”아베 총리는 자리에 오르면서 서둘러 미국을 방문, 미국에 충실한 하인이 됐다”고 지적했다.

이어진 기조 연설에서 이장희 한국외대 명예교수는 카이로 선언의 핵심가치인 ‘일본 제국주의 침략자의 단호한 처벌과 그 희생자보호’, 일본의 탐욕과 폭력으로 탈취한 영토주권 회복’ 등 연합국이 최초로 합의한 신사협정이 1951년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 초안 단계에서 제대로 반영되지 않았고, 그 후에도 충분하게 실현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당시 미국은 1947년 이후 불어 닥친 냉전으로 일본 전범에 대해서 너무 관대했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은 미국 국익중심으로 전통적 평화조약의 징벌적 조약을 배제하고 결국 일본에 면죄부 및 냉전 질서 옹호문서로 전락, 일제 강점을 합법화 해준 1965년 한일 협정체제와 냉전질서의 버팀목인 1953년 한국정전협정체제를 탄생시켰다”며 “샌프란시스코체제의 이러한 한계점 때문에 동아시아는 결국 식민지, 제국주의의 유산과 냉전 질서 속에서 몸살을 현재 앓고 있다”고 설명했다.

일제강제동원과 일본군위안부 문제와 대한국수출규제와 화이트리스트 배제 등 일본의 국제법위반 사례를 지적한 이 교수는 ” 동아시아 평화ㆍ역사화해ㆍ인권공동체는 샌프란시스코 체제의 한계점을 극복하지 않고는 불가능하다. 이것이 한일 및 동아시아에서 과거사 및 냉전질서에서 오는 역사 왜곡문제 및 영토적 갈등해결을 위한 근본적 해법”이라며 “동아시아의 평화는 미국중심의 양자주의 굴레에서 벗어나서 다자주의로 나가야 한다. ‘동아시아 6자평화회의’가 그 해답”이라고 주장했다.

이하 이장희 한국외대 명예교수/ 국제중재재판소(PCA) 재판관 기조연설 요약.

“카이로 선언 핵심가치와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 한계 극복을 위한 출구전략”

카이로 선언(1943.12.1.)의 핵심가치는 <일본 제국주의 침략자의 단호한 처벌 및 그 희생자 보호>, < 1914년 제1차대전 개시 이후 일본이 탈취해간 태평양의 일부도서와 만주 대만 등 중국의 영토주권 회복> , <일본의 탐욕과 폭력으로 탈취한 영토주권 회복(독도)>, <한국인의 자유와 독립 및 인권 보호>를 미국, 영국, 소련(중국)이 포함된 연합국이 최초로 합의한 신사협정이다. 이 선언은 포츠담선언(1945.7.26.)에서 모두 재확인-일본의 ‘포츠담선언 무조건 수락’(1945.8.10.)과 ‘일본의 항복문서 서명’(1945.9.2.)-SCAPIN 677(1946.1.29.)으로 연합국최고사령부의 실제 집행으로 연결돼 상당부분 법적으로 구속력있는 문서로 되었다.

그런데 카이로 선언의 핵심정신들이 태평양 전쟁을 법적으로 종결하는 1951년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 초안 단계에서 제대로 반영되지도 않고, 그 후에도 충분하게 실현되지 않았다. 그 요인은 당시 미국이 1947년 이후 불어 닥친 냉전질서에 대비하여 일본 전범에 대해서 너무 관대하였고, 만주 일본관동군을 과대평가하여 소련을 태평양 전쟁에 참전하게 한 전략적 큰 실수도 했다. 뿐만아니라 일본 로비스트들(예: Willam Sebald)이 미 국무성에 안보를 빙자해(독도에 레이다 기지 및 기상대 설치 등)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 초안단계에서 카이로선언 핵심정신 실천에 대한 집요한 방해 공작이 있었다.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은 미국 국익중심으로 전통적 평화조약의 징벌적 조약을 배제하고 결국 일본에게 면죄부 문서 및 냉전 질서 옹호문서로 전락, 일제 36년 강점을 합법화 해준 1965년 한일 협정체제와 냉전질서의 버팀목인 1953년 한국정전협정체제를 탄생시켰다. 샌프란시스코체제의 이러한 한계점 때문에 동아시아는 결국 식민지, 제국주의의 유산과 냉전 질서 속에서 몸살을 앓고 있다.

유럽은 1986년 개혁개방 이후 냉전체제인 얄타체체가 붕괴, 유럽연합(EU)을 넘어 유럽연방을 꿈꾸고 있다. 더구나 국제사회는 2001년 더반(Durban) 선언을 포함해 국제법 및 국제사회의 인도주의화로 발전해가는 것이 큰 흐름이다.

그러나 세계 경제력의 3분의 1을 차지하면서도 국제평화에 가장 주요한 역할이 기대되는 동아시아는 1951년 샌프란시스코체제라는 냉전체제에 갇혀 영토분쟁을 포함한 다양한 이슈에서 큰 내홍을 앓고 있다. 샌프란시스코체제는 일제과거사 식민지 잔재 미청산의 합법화와 한반도 장기분단의 토대를 제공한다. 그 상징이 일제강점을 합법화한 1965년 한일협정체제이고, 다른 하나는 1953년 정전체제이다. 이 두 체제가 아직도 연명하는 이유는 1951년 샌프란시스코 냉전체제라는 숙주가 아직도 동아시아에 버티고 있기 때문이다. 또 이를 고수하려는 미국과 일본의 군사적 패권주의가 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한일 간 갈등을 자세히 보자. 일본이 겉으로는 안보위해를 빙자해 대한국수출규제라는 경제보복조치 등을 강조하지만, 실제로는 일제강제동원피해자 대법원판결을 문제 삼고 있다. 이는 수면 하에 잠재해있던 한일 간의 근본적 갈등이 노골적으로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이다. 1951샌프란시스코체제와 그 아류인 1965년 한일협정체제는 한반도의 일제강점을 합법적 식민지로 만들어 주었다. 이것은 전범국가 일본에 면제부를 부여했다. 다시 말해 한일 간 근본적 갈등은 일제강점의 법적성격에 대한 한일 간 근본적 입장 차이 문제이다.

2012년 한국대법원판결은 최초로 일제강점은 불법이며,1965년 청구권협정 및 기존 하급심 판결은 대한민국헌법 핵심가치(3.1운동정신ㆍ상해임시정부의 법통)에 위반된다고 두번째로 재확인했다. 이것은 일제강점을 합법이라고 보는 식민지근대화론과 평화헌법개정을 강변하는 아베정권의 정치적 군사적 패권주의에 정면 배치되는 것이다. 아베정권은 한국의 대법원판결을 일본 우익 정치 자파 단합용이자 국제사회 홍보용으로 이용하면서 일본은 한국이 국제법을 위반하고 있다고 강변하고 있다. 한국 대법원이 1965년 한일청구권 협정의 최종적 해결 합의를 위반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정부가 중재위 해결에 응하지 않는 것도 1965년 청구권협정 위반이라고 한다. 일본 주장이 틀렸다. 이것은 주권국가의 선택사항이댜

그러면 일본의 국제법위반사례 가장 최근 다섯 가지를 들어보자.

첫째 일제강제동원 판결은 반인륜범죄를 위반한 일본전범기업에 대한 피해자손해배상 판결이다. 일본정부가 2012년처럼 대법원 판결를 방해하고 있는 것은 반 인륜범죄를 금지하는 국제 강행규범(jus cogens)을 위반하고 있다.

둘째 중재에 응하지 않는 것은 해당국가의 선택사항이지 의무사항이 아니다. 더구나 청구권협정 제3조 1차적 해결로 한국정부의 외교적 대화요구를 일본은 계속 거부하고 있다.

그런데도 2차적 해결인 중재요구를 하는 것은 그 진정성이 매우 의심된다. 대법판결을 흥집내려는 홍보성이 짙다. 그 좋은 사례가 독도문제인데, 일본은 1954년부터 독도문제를 국제사법재판소(ICJ )에 제소하자고 강변한다. 그 결과가 한국에 명백히 한국승소가 명백한데도 일본은 반복한다.

셋째 2011년 일본 성노예 위안부 헌법재판소 판결이후, 한국정부가 공식으로 요구한 외교적 해결, 중재해결 요구를 일본정부는 당시 모두 거절했다.

넷째 일본은 1990년 이전은 말할 것도 없고, 90년대 중반이후 성노예 관련 UN인귄이사회 및 국제법률가협회의 수많은 권고결의(가해자 처벌 및 피해자 배상을 위한 국내 특별법 제정)도 모두 무시했다. 한일 관계에서는 일본이 국제법위반을 운운 할 자격이 없다.

다섯째 일본의 대한국수출규제와 화이트 리스트 배제는 자유무역질서를 지향하는 명백한 WTO협정 위반이다. WTO 상소기구가 분쟁처리 패널를 통해서 최종심인 2심에서 일본의 국제법 위반으로 결론냈다.

생각컨데 이러한 한일 간 근본 문제해결을 위해서는 일본 우익세력에 기반한 아베정부의 역사인식제고 및 정책변화가 그 관건이다.

그래서 우리는 이 문제를 한일 양국 정부라는 국가주의에만 맡겨둘 수 없다. 동아시아 시민사회가 우선 나서야 한다. 우선 역사적 진실에 기초한 동아시아평화와 역사화해 및 인권을 기원하는 깨어있는 조직화 된 시민단체가 주도적으로 소속 정부 및 국민 그리고 국제사회를 설득하는데 적극적으로 나서야한다. 이를 가칭 1951년 샌프란시스코 체제 극복을 위한 “아시아 NGO평화네트워크”라는 (“Asian NGO Peace-Network(ANPN)결성을 제안한다. 1차적으로 ANPN은 “아시아 시민 사회 헌장(Asian Civil Society Charter”을 제정하고, 이에 기초한 구체적 action program을 점차적으로 실천하는 캠페인을 국경을 넘어서 벌여 나가가야 할 것이다. 궁극적으로는 ANPN은 소속 정부를 압박해 “아시아 시민 사회 헌장(Asian Civil Society Charter”을 수용하는 국가차원의 ”Council of Asia“(아시아 평의회)로 발전되어 가야 할 것이다. 유럽의 ”Council of Europe“(1949) 결성과정도 하나의 좋은 모델이 될 것이다.

동아시아 평화ㆍ역사화해ㆍ인권공동체는 샌프란시스코 체제의 한계점을 극복하지 않고는 불가능하다. 이것이 한일 및 동아시아에서 과거사 및 냉전질서에서 오는 역사 왜곡문제 및 영토적 갈등해결을 위한 근본적 해법이다. 결론적으로 시민사회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ANPN결성- Asian Civil Society Charter”채택, “Council of Asia”의 로드 맵을 추동해 나가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제 동아시아의 평화는 미국 중심의 양자주의 굴레에서 벗어나서 다자주의로 나가야 한다. <동아시아 6자평화회의>가 그 정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