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개월, 200편…AI ‘초생산성’이 학계에 던진 물음
시카고대학교 부스경영대학원의 계량경제학·통계학 교수 니콜라스 폴슨은 올해 9개월 동안 200편 넘는 연구물을 저술하거나 공동 저술했다. 이름을 올린 책도 14권이다. 통상 학자 대부분이 연간 몇 편, 생산성이 아주 높은 교수라도 연간 10여 편을 내는 것과 비교하면 이례적인 규모다.
워싱턴포스트가 9월 23일(현지시각) 이를 보도하면서 논란이 커지자 폴슨이 연구물을 게시해온 프리프린트 플랫폼 SSRN은 최근 한 달 새 폴슨이 단독 또는 공동으로 쓴 257편을 삭제하고 관련 업로드 계정을 동결했다.
워싱턴포스트는 폴슨에게 연구 부정 행위나 조작 혐의가 제기된 것은 아니라고 명시했다. 쟁점은 이렇게 짧은 기간에 이 정도 분량을 생산하는 것이 가능한지, AI가 어느 정도 관여했는지, 그 과정이 충분히 투명했는지다.
200편은 ‘학술지 논문 200편’이 아니다
숫자부터 구분할 필요가 있다. 통계학자 앤드루 겔먼을 비롯한 여러 관찰자가 집계한 바에 따르면, 폴슨이 2026년 SSRN에 올린 것으로 확인된 작업물은 258편에 달했다. 이는 동료평가를 거쳐 학술지에 최종 게재된 논문이 아니라 워킹페이퍼, 즉 공유 단계의 연구물이다. 자주 이름을 올린 공동저자 조지메이슨대의 바딤 소콜로프는 이 가운데 100편 넘게 참여했다.
분량은 짧은 메모 수준이 아니었다. 20쪽에서 80쪽에 이르는 일반적인 학술 논문 형식을 갖췄고, 이론적 수리모형과 실증 회귀분석을 모두 포함했다. 경제학 블로거 겸 대학 강사 제러미 호페달은 8월 시점에 이미 258편이 게시된 것을 확인했다고 전했다. 따라서 “9개월 만에 논문 200편을 발표했다”보다는 “9개월 동안 200편 넘는 연구물을 공개 플랫폼에 게시했다”는 표현이 사실관계에 더 가깝다. SSRN은 동료평가를 거치는 학술지가 아니라 연구자들이 완성 전 단계의 원고를 공유하는 플랫폼이기 때문이다.
폴슨 “AI가 반복 작업을 줄여줬다”
폴슨은 AI 사용 자체를 부인하지 않았다. 그는 워싱턴포스트에 보낸 이메일에서 AI를 활용해 연구 과정을 도왔다고 인정하면서도, 자신이 쓴 어느 논문에서 AI 사용을 공개했는지는 밝히지 않았다. 그는 소셜미디어 등에서 나온 비판이 자신의 연구 방식에 대한 질투와 방법을 가로채려는 시도에서 비롯됐다고 반박한 것으로 전해졌다.
AI를 썼다는 사실 자체가 논문의 질이 낮다는 증거는 아니다. 반대로 생산량이 많다는 이유만으로 부실하다고 단정할 수도 없다. 결국 필요한 것은 개별 연구물에 대한 검증이며, 이 지점이 AI 시대 학술 평가가 부딪히는 어려운 문제다.
컬럼비아대 통계학자 앤드루 겔먼은 폴슨의 모든 논문을 검토한 것은 아니라고 전제하면서도, 그가 읽은 80쪽짜리 논문(부제 “경제학, 심리학, 생물학, 철학, 게임이론, 영성 전통을 아우르는 학제간 종합”) 일부는 챗봇이 쓴 것처럼 읽혔다고 밝혔다. 그는 이미 자리를 잡은 대학 교수가 왜 이런 방식으로 방대한 연구물을 생산하는지 의문을 제기했다.
SSRN이 실제로 문제 삼은 것
이번 사건에서 가장 눈여겨볼 대목은 SSRN의 설명이다. SSRN은 학자들에게 AI 사용 시 이를 공개하도록 요구하고 있고, 폴슨의 논문 다수가 이를 지키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SSRN은 이것이 핵심 문제가 아니라고 못 박았다. “더 중요한 것은 비정상적인 논문 제출 패턴”이라는 것이다.
이 구분은 중요하다. 이번 사건을 “AI를 썼기 때문에 삭제됐다”로 단순화하면 실제 구조를 왜곡하게 된다. 더 정확한 질문은 AI를 활용한 연구 생산량이 인간의 검증 능력을 넘어설 경우 플랫폼이 이를 어디까지 허용할 것인가다.
이미 시작된 ‘AI 논문 홍수’
폴슨 사례가 한 개인의 특수한 사건에 그치지 않을 것이라는 근거도 있다. 펜실베니아대학 와튼스쿨의 클로딘 가텐버그가 참여한 연구진은 저널 Organization Science에 발표한 연구에서 2021년 1월부터 2026년 2월까지 제출된 6957건의 최초 투고와 1만389건의 텍스트 기반 심사평을 분석했다.
그 결과 챗GPT가 등장한 2022년 말 이후 투고량은 42% 늘었다. AI 사용 흔적이 강한 원고일수록 문장이 더 읽기 어렵고 전문용어가 많아지는 경향이 나타났고, 심사평의 30% 이상에서도 일정 수준의 AI 사용이 관찰됐다. 가텐버그 자신도 자신의 연구에 AI 도구를 활용한다고 밝히면서, AI가 생산량을 늘리는 만큼 편집자와 심사자가 감당해야 할 검증 부담도 함께 커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논쟁의 핵심은 AI 사용 여부가 아니라 어디까지 사용하고 누가 최종 책임을 지느냐다.
‘슬롭’보다 무거운 문제는 검증 비용
온라인에서는 이 현상을 ‘AI 슬롭(AI Slop)’이라는 표현으로 비판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AI 슬롭은 생성형 인공지능 기술을 사용하여 양산되는 글과 그림 등 저품질 콘텐츠를 경멸적인 용도로 부르는 말이다. 그러나 이 표현을 모든 AI 활용 연구물에 일괄 적용하는 것은 부정확하다. AI 활용 범위는 단순 문장 교정부터 코드 작성, 문헌 검색, 데이터 분석, 가설 생성까지 폭이 넓기 때문이다.
더 구체적인 문제는 검증 비용의 상승이다. 한 연구자가 하루 한 편을 쓰던 시절에는 동료들이 이를 읽고 검토할 여지가 있었다. AI가 생산량을 수십 배로 늘리면 상황이 달라진다. 생산 속도가 오르는 만큼 심사자의 읽기 속도가 함께 늘어나지는 않는다. 여기에 존재하지 않는 참고문헌, 잘못된 계산, 중복 연구, 부정확한 데이터 해석이 섞이면 심사 체계는 새로운 병목에 부딪힌다. 워싱턴포스트가 인용한 사례에서도 검증할 수 없는 참고문헌이 포함된 논문이 확인됐다.
이런 우려가 새로운 것은 아니다. 1998년 The Lancet에 실린 앤드루 웨이크필드의 MMR 백신-자폐증 연관성 연구는 이후 심각한 결함이 드러나 2010년 철회됐다. 검증 실패가 공중보건과 사회적 신뢰에 미친 파장을 보여준 대표 사례다. 논문 생산 비용이 낮아질수록 검증 비용의 상대적 중요성이 커진다는 오래된 교훈이 AI 시대에 다시 소환되는 이유다.
연구자는 ‘저자’에서 ‘지휘자’로 이동하는가
AI 시대 연구자의 역할이 문장을 직접 쓰는 사람에서 연구 전체를 설계하고 여러 AI 도구를 조율하는 사람으로 옮겨간다는 관점도 있다. 가설을 세우고 연구 질문을 정하고 필요한 데이터를 정의한 뒤, AI로 문헌과 코드를 처리하고 결과를 검증해 최종 판단을 내리는 방식이다.
이 관점에서 AI는 계산기나 통계 소프트웨어의 연장선에 있다. 연구자가 계산을 손으로 하지 않는다고 연구가 덜 학술적인 것은 아니다. 다만 계산기는 계산 결과만 내놓지만 생성형 AI는 문장과 가설, 코드, 참고문헌, 해석까지 만들어낸다는 차이가 있다. 연구자의 역할이 지휘자로 옮겨갈수록 검증 책임은 오히려 커진다.
학계가 다시 던져야 할 질문
폴슨 사건은 AI 연구를 금지해야 한다는 결론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오히려 학술 출판계는 AI의 존재를 전제로 새 규칙을 만들고 있다. SSRN은 AI 사용 공개와 인간 저자의 최종 책임을 요구하고, Organization Science는 AI로 더 많은 논문을 만드는 것을 넘어 AI로 더 나은 과학을 만드는 방법을 다루는 특별호를 추진 중이다.
앞으로의 경쟁은 누가 AI로 논문을 더 많이 만드는가가 아닐 가능성이 크다. 누가 AI를 쓰면서도 연구의 독창성과 재현성, 검증 가능성을 지킬 수 있는가가 더 중요해진다. 폴슨의 200편이라는 숫자는 그 자체로 결론이 아니라 출발점이다. 이 숫자가 학술 생산성의 혁명을 뜻하는지, 아니면 인간 심사 체계가 감당하기 어려운 정보 과잉의 시작인지는 개별 연구물이 실제 검증을 통과하는 과정에서 드러날 것이다. 한 명의 연구자가 과거에는 상상하기 어려웠던 규모의 연구 생산 시스템을 운용할 수 있는 시대가 이미 시작됐다는 점만은 분명하다. 그 순간 학계가 다시 정의해야 할 것은 ‘논문을 쓰는 능력’이 아니라 무엇을 연구라 부를 것인지, 그 결과에 누가 책임질 것인지라는 오래된 질문이다.

David is the Editor of The Science Monitor. Drawing on extensive experience as the former Public Affairs officer for the Republic of Korea (ROK) Navy, he provide in-depth analysis at the intersection of science, technology, global security, geopolitics, and maritime strateg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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