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텍, 우주 공간에서 로봇 자율 조립 시연 최초 성공
칼텍 연구팀, 로봇 단독으로 우주 구조물 골격 자율 조립 사상 첫 성공
DARPA ‘NOM4D’ 프로젝트 핵심 이정표 달성…우주 거대 구조물 도전
인류가 우주로 쏘아 올린 가장 거대한 눈, 제임스 웹 우주망원경(JWST)을 떠올려 보자. 지름 6.5미터짜리 거울을 우주로 보내기 위해 과학자들은 그 거대한 구조물을 종이접기하듯 수십 번 접어 아리안 5호 로켓의 비좁은 페어링(탑재물 덮개) 안에 억지로 구겨 넣어야 했다. 만약 수백 미터, 혹은 수 킬로미터 크기의 태양광 발전소나 심우주 안테나를 궤도에 띄워야 한다면 어떨까? 아무리 정교한 종이접기 기술이라도 로켓의 물리적 부피라는 태생적 한계를 넘어설 수는 없다.
이 오랜 공학적 딜레마에 마침표를 찍을 사건이 지구 상공 수백 킬로미터 저궤도에서 일어났다. 사람의 손길이나 실시간 조종 없이, 오직 로봇의 힘만으로 우주 공간에서 구조물을 직접 조립해 낸 것이다. 미국 캘리포니아 공과대학교(Caltech·칼텍)의 세르지오 펠레그리노 교수 연구팀은 현지 시각 11월 6일, 자율 조립 시스템 ‘아스트라(ASTRA)’가 지구 저궤도에서 반사형 안테나의 골격을 스스로 건설하는 데 성공했다고 발표했다. 인류 역사상 우주비행사의 위험한 우주유영(EVA) 없이 궤도에서 구조물이 자율적으로 지어진 첫 순간이다.
이 작은 기적의 시작은 지난 3월 30일 이른 아침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캘리포니아 반덴버그 우주군 기지를 박차고 오른 스페이스X의 트랜스포터-16 로켓에는 우주 수송 기업 모멘투스(Momentus)의 궤도 서비스선 ‘비고라이드 7’이 실려 있었다. 아스트라는 이 우주선이 품은 10개의 탑재체 중 하나로 저궤도행 티켓을 거머쥐었다. 가로·세로·높이가 각각 1미터 남짓한 상자 크기의 아스트라는 발사 순간의 엄청난 충격과 진동을 무사히 견뎌냈다. 좁은 상자 속에는 팔 형태의 로봇 매니퓰레이터와 지상에서 미리 조립된 두 구획의 트러스 베이(Bay), 그리고 나머지 구조물을 짓는 데 필요한 스트럿(탄소복합재 튜브)과 조인트 부품들이 전동 디스펜서 안에 빈틈없이 들어차 있었다.
칼텍 박사후연구원으로 프로젝트 초기부터 참여해 현재 텍사스 대학교 오스틴(UT Austin) 조교수로 재직 중인 제이든 서(Jaden Suh). 그는 어린 시절부터 우주 구조물에 남다른 호기심을 품어왔다. 그는 자신이 설계하고 고안한 아이디어들이 집약된 시스템이 실제 우주 궤도에서 펼쳐지는 모습을 목격했다.
아스트라가 무사히 궤도에 안착하자, 지상 팀은 비고라이드 우주선을 통해 아스트라의 온보드 컴퓨터로 명령을 보내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발사 도중 부품들이 흔들리지 않게 붙잡고 있던 고정 장치(런치 리스트레인트)가 해제됐다. 뒤이어 트러스 빌더 내부에 수납되어 있던 두 개의 사전 조립 베이가 우주 공간으로 밀려 나왔고, 마침내 세 번째 베이를 현장에서 직접 짓는 작업이 막을 올렸다.
아스트라에게 주어진 전체 임무는 총 11개의 동일한 트러스 구획인 베이를 레고 블록처럼 이어 붙여 지름 1.4미터 크기의 원형 안테나 프레임을 완성하는 일이다. 주 매니퓰레이터 로봇이 움직이며 전동 디스펜서에서 스트럿과 조인트를 하나씩 집어 올려 조립 플레이트 위의 정확한 위치에 끼워 맞추는 방식으로 각 베이가 만들어진다. 골격 조립이 끝나면 매니퓰레이터는 구멍이 촘촘히 뚫린 그물망 형태의 타공 필름을 트러스에 부착한다. 이 필름들은 스프링을 통해 서로 반대 방향으로 당겨지며 팽팽한 장력(프리스트레스)을 형성하는 두 겹의 반사형 케이블 네트를 이룬다.
여기에 쓰인 반사 소재는 칼텍 연구팀과 펜실베이니아 대학교 이고르 바르가틴 교수팀이 공동으로 발명한 작품이다. 기존 접이식 우주 안테나에 흔히 쓰이는 금속 편조 메쉬와 달리, 아주 적은 장력만으로도 팽팽한 곡면을 유지할 수 있어 지지 구조물 전체를 훨씬 가볍게 설계할 수 있도록 해준다. 이렇게 한 구획의 준비와 네트 결착이 모두 끝나면 완성된 베이를 우주 공간 쪽으로 밀어내고, 그 자리에 다음 베이를 이어 짓는 시퀀스가 반복된다.
물론 지난 6개월간의 궤도 실험이 설계도처럼 매끄럽게만 흘러간 것은 아니다. 전 칼텍 시스템 엔지니어 찰스 소머와 연구 엔지니어 알란 트루옹, 그리고 대학원생 타라 벤카타드리는 우주로 조립 명령을 전송한 뒤, 탑재체에 달린 11대의 카메라가 찍어 보낸 사진을 내려받아 결과를 하나씩 대조했다. 그 과정에서 생각지도 못한 수많은 문제들이 불거졌다. 제이든 서 교수는 지상과 전혀 다른 우주 환경에서는 언제나 작은 돌발 변수들이 튀어나오기 마련이며, 바로 그 점 때문에 개념 증명(PoC) 시험이 반드시 필요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예기치 못한 우주에서의 난관을 돌파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 건 패서디나 칼텍 연구실에 똑같이 만들어 둔 지상 복제 모델, 즉 ‘비행 예비품(Flight Spare Twin)’이었다. 지상에서 우주선과 교신할 수 있는 시간은 하루 중 고작 15분 남짓한 통신 창구(Window)가 열리는 7~8차례뿐이었다. 찰스 소머의 설명처럼 연구팀은 우주에서 문제가 확인될 때마다 즉시 실험실로 달려가 지상의 쌍둥이 로봇에서 똑같은 오류 상황을 재현했다. 여러 대안을 테스트해 해결책을 찾아낸 뒤, 다음 교신 시간에 우주의 아스트라에게 우회 명령을 전송하는 끈질긴 작업이 되풀이됐다.
이번 성공 뒤에는 미국 국방고등연구계획국(DARPA)이 2022년부터 추진해 온 ‘NOM4D(궤도 및 달 신개념 제조·소재·질량 효율 설계)’ 프로그램의 대담한 비전이 자리 잡고 있다. 지금까지의 모든 위성과 우주 구조물은 발사 순간의 가혹한 하중을 견디기 위해 필요 이상으로 무겁게 설계되어야 했다. NOM4D는 원재료와 부품을 고밀도로 압축해 쏘아 올린 뒤 고요한 궤도에서 직접 조립함으로써, 종잇장처럼 가벼우면서도 거대한 구조물을 짓겠다는 발상이다. 칼텍의 아스트라는 이 프로그램에서 실제 궤도 실증 단계인 3단계(Phase 3)에 도달한 단 두 개의 과제 중 하나다. 앤드류 데토어 DARPA 프로그램 매니저는 이번 실증을 통해 현재의 기술로는 결코 도달할 수 없는 규모의 인프라를 우주에서 효율적으로 건설하는 시대가 열릴 것이라고 평가했다.
오는 12월 공식 임무 종료를 앞둔 아스트라는 시간 제약상 11개 베이 전체를 다 채우지는 못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세 번째 베이를 궤도에서 스스로 조립해 낸 것만으로도 궤도 내 자율 조립 방식의 실현 가능성은 충분히 입증됐다. 연구팀은 이번 실증에서 얻은 교훈을 바탕으로 향후 설계를 한층 더 단순화하고 정교하게 다듬을 계획이다.
펠레그리노 교수는 지상에서 미리 만들어 접어 올릴 수 있는 크기의 한계에 도달하면 결국 우주에서 직접 짓는 방법을 고민할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그의 말처럼 이번 기술은 천문학이나 천체물리학용 관측 장비는 물론, 고성능 통신 안테나와 우주 태양광 발전을 위한 초거대 태양전지 어레이 건설까지 우주 산업의 지형도를 바꿀 열쇠를 쥐고 있다. 로켓의 크기에 맞춰 인간의 상상력을 접어 넣던 시대는 끝났다. 우주로 파견된 작은 로봇 목수들이 지구 상공에서 수 킬로미터짜리 발전소와 거대 망원경을 뚝딱거리고 지어낼 날은 과연 얼마나 남았을까.
편집장/ Editor-in-Chief
국가 안보 정책과 연계된 과학기술 분야 혁신 등 영향력 있는 분석을 생산하고 있다. 주로 핵심 과학기술 연구, 글로벌 안보, 지정학, 해양 전략을 주제로 집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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