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 공대·IBM 새로운 표준 제시
‘수개월 테스트, 단숨에 해결’
마이크로일렉트로닉스(미세전자공학) 산업이 새로운 소재와 칩 구조를 도입하며 거대한 전환기를 맞이하고 있는 가운데, 신소재의 수명을 예측하는 기존의 검사 방식에 심각한 오류가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오스트리아 빈 공과대학교(TU Wien) 연구팀은 글로벌 IT 기업 IBM, 싱가포르 국립대학교(NUS)와 공동 연구를 통해, 반도체 기술에 사용되는 차세대 절연체의 안정성 테스트가 대부분 잘못된 방식으로 이루어지고 있다고 경고했다. 이와 함께 연구팀은 불과 수일 만에 정확한 칩 수명을 예측할 수 있는 새로운 통계적 측정법을 제시했다. 이번 연구는 국제 학술지 ‘네이처 일렉트로닉스(Nature Electronics)’ 최신호에 게재됐다.
“얇아진 나노막, 기존 단순 계산법 안 통해”
트랜지스터의 수명은 어떤 절연 소재를 사용하고, 얼마나 높은 전압을 버텨내느냐에 달려 있다. 기존에는 절연 층이 두꺼워 전압을 계속 높여가며 파괴되는 순간의 전압을 측정하는 단순한 방식을 사용했다. 예컨대 두께가 10분의 1로 줄어들면, 버틸 수 있는 전압도 10분의 1로 줄어들 것이라고 가정하는 식이다.
그러나 현대 반도체에 쓰이는 나노미터(nm) 단위의 초박막 층에서는 이러한 계산이 완전히 무너진다.
빈 공대 미세전자공학 연구소의 티보 그라서(Tibor Grasser) 교수는 “박막의 붕괴 전압은 단순한 소재의 고유 상수가 아니다. 붕괴는 무작위적이고 시간에 따라 달라지는 현상”이라며 “절연막은 전압이 특정 수치에 도달하자마자 즉시 깨지는 것이 아니라 시간이 걸리며, 소재 내부의 미세한 결함(weak points)에서부터 서서히 무너지기 시작한다”고 설명했다. 샘플의 온도나 면적이 넓어질수록 결함이 많아져 결과가 완전히 달라진다는 의미다.
그라서 교수는 “기존의 단순화된 방식으로 소재의 견고함을 예측하면 결과가 완전히 틀리게 나온다”고 강력히 경고했다.
반도체 업계의 고민… ‘수개월 걸리는 테스트’ 아니면 ‘대형 리콜’
이러한 측정 오류는 반도체 업계에 치명적인 경제적 손실을 초래할 수 있다. 잘못된 수명 예측으로 전자기기가 예상보다 훨씬 빨리 고장 나면 대규모 리콜 사태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차세대 기술을 위한 최적의 절연체를 찾아야 하는 현재의 상황에서 신속하고 정확한 수명 예측은 기업의 생존과 직결된다.
지금까지 이를 방지하기 위한 유일한 대안은 극도로 까다로운 통계 검사뿐이었다. 수많은 소재 샘플에 다양한 일정 전압을 걸어놓고 붕괴할 때까지 무작정 기다리는 방식이다. 그라서 교수는 “이 방식을 쓰면 쓸 만한 데이터를 얻는 데만 수개월이 걸린다”고 말했다.
3가지 전압 속도로 끝내는 ‘혁신적 통계 모델’
연구팀이 제시한 해법은 의외로 간단하면서도 정교하다. 무작정 기다리는 대신, 서로 다른 세 가지 속도로 전압을 정밀하게 올리며 부품이 파괴되는 시점을 측정하는 것이다.
이후 연구팀이 개발한 특수 통계 절연 모델을 적용하면, 전압이 올라가는 가속도와 부품의 파괴 확률 사이의 상관관계를 정확하게 도출해낼 수 있다.
새로운 측정법의 핵심 이점에 대해 티보 그라서 교수는 “이 방법을 사용하면 ‘특정 면적을 가진 부품 몇 개가 얼마 동안의 시간 동안 최대 몇 볼트(V)의 전압을 버틸 수 있는가?’를 명확하게 계산할 수 있다. 즉, 실제 제품에 허용되는 ‘최대 동작 전압’을 정확히 알 수 있게 된다” 고 말했다.
이번 연구 성과로 반도체 제조사들은 수개월씩 걸리던 신소재 검증 과정을 획기적으로 단축할 수 있게 됐다. 연구팀은 제조 공정 단계에서부터 올바른 소재와 기술을 더 빠르고 확신 있게 선택할 수 있어 차세대 칩 개발 속도가 한층 더 빨라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