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아공 출신 국제법학자 및 인권운동가…유엔 인권최고대표 등 역임

노벨위원회 “국제법 기관들에 엄청난 공격…법치주의가 평화의 초석”

(오슬로=) 2026년 노벨 평화상의 영예는 남아프리카공화국 출신의 저명한 국제법학자이자 전 유엔 인권최고대표인 나바네템 ‘나비’ 필레이(Navi Pillay)에게 돌아갔다.

노르웨이 노벨위원회는 9일(현지시간) “평화와 국제법을 증진하기 위한 헌신을 기리며 2026년 노벨 평화상 수상자로 나비 필레이를 선정했다”고 공식 발표했다. 위원회는 “필레이는 예외적인 용기와 도덕성으로 보다 포괄적인 글로벌 법질서를 구축하는 데 앞장섰다”며, “전쟁 범죄와 인도에 반하는 죄, 제노사이드(집단학살)를 처벌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고 선정 이유를 밝혔다.

남아공 더번의 아파르트헤이트(흑인 차별 정책) 체제하에서 인도계 타밀족 가정에서 태어난 필레이는 넬슨 만델라를 변호하며 인권 변호사로서의 길을 걸었다. 이후 남아공 고등법원 판사, 르완다 국제형사재판소(ICTR), 국제형사재판소(ICC) 판사 및 유엔 인권최고대표를 역임하며 국제법 지평을 크게 넓혔다. 특히 르완다 재판소 재직 당시, ‘강간과 성폭력 역시 인도에 반하는 죄 및 제노사이드를 구성할 수 있다’는 역사적인 법적 이정표를 세웠으며, 현재는 국제사법재판소(ICJ)에서 미얀마 제노사이드 사건의 재판관으로 활동하고 있다.

credit:unwatch.

이날 노벨위원회는 무력 정치가 득세하고 법치주의가 훼손되는 현 국제사회에 대한 강력한 경고의 메시지도 함께 내놨다. 위원회는 “현재 국제법 시스템은 엄청난 압박을 받고 있으며 관련 기관들은 공격받고 있다”며 “힘이 권리를 압도할 때 안정과 신뢰, 평화적 공존은 훼손된다”고 지적했다.

발표 직후 이어진 현지 기자들과의 인터뷰 및 질의응답에서는 수상 배경에 대한 깊이 있는 질문들이 이어졌다.

‘국제 재판소와 기관들이 오랫동안 후보로 거론되어 왔는데, 왜 하필 2026년인 올해 이 주제를 조명했느냐’는 한 외신의 질문에 노벨위원회 위원장은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에서 국제법을 수호하는 기관들은 현재 엄청난 압박과 제재, 공격을 받고 있다”며 “오랜만에 가장 많은 분쟁이 일어나는 지금, 이들 기관의 작업을 지원하고 강화하며 확장하는 것이 보다 평화로운 세계를 위해 필수적이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또한, ‘세계의 잔혹한 정권들은 국제법이나 관련 기관을 무시하는데, 기관 전체가 아닌 판사 개인에게 상을 수여하여 무엇을 성취하고자 하는가’라는 날카로운 질문도 나왔다. 이에 대해 위원회 측은 “국제법이 완벽하지 않고 모든 분쟁을 막아내지 못한 것은 안타까운 현실이지만, 법적 조치가 전쟁과 폭력 행위를 예방한다는 것은 엄연한 사실”이라며 “우리는 보다 평화로운 세계의 주춧돌(cornerstone)이 바로 국제법을 강화하는 것임을 전 세계에 상기시키고자 한다”고 강조했다.

국제법정 전체보다 수상자 개인의 역할에 지나치게 초점이 맞춰진 것 아니냐는 지적에는 “필레이는 넬슨 만델라를 변호하던 시절부터 오늘날 우리 시대의 주요 국제 재판에 이르기까지 수십 년간 국제법 발전의 최전선에 서 있었던 가장 용기 있고 중요한 법률 전문가 중 한 명”이라고 선을 그었다.

한편, 위원회는 아직 수상자인 필레이 본인과 직접 연락이 닿지 않은 상태라고 밝혔다. 노벨위원회 위원장은 “그녀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단 하나다. 혹시 노르웨이 국가 번호로 전화가 걸려 오면 제발 받아달라”고 농담을 던져 장내에 웃음을 자아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