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 개정해 특혜성 정책자금 투입…WTO 규정 위반 소지
리벨리온, 퓨리오사AI, 딥엑스. 국산 AI 반도체 3사에 올해 들어 정책자금이 집중됐다. 국민성장펀드가 리벨리온에 2,500억 원, 퓨리오사AI에 3700억 원을 넣었다. 민간 매칭 자금 포함시 최대 8000억 원에 이른다. 수출입은행도 관련법 시행령을 고쳐가며 두 회사에 각각 200억 원씩 얹었다.
숫자만 보면 국가가 K-NPU를 전방위로 밀어주는 모양새다. 그러나 이 구조에는 두 가지 문제가 겹쳐 있다. 하나는 자금이 성과로 여겨지는 부분이고, 다른 하나는 이 자금 구조 자체가 향후 통상 마찰의 소지를 안고 있다는 점이다.
정책자금 조달 후 온도차 뚜렷
세 회사의 자금 조달 이후 행보를 나란히 놓으면 온도차가 뚜렷하다.
리벨리온은 자금을 하드웨어 밖으로 확장하는 데 썼다. 서버·랙 제품(RebelRack, RebelPOD)을 출시하고, AI 추론 최적화 기업 스퀴즈비츠를 인수해 소프트웨어·서빙 역량을 흡수했다. SK텔레콤의 자체 거대언어모델을 자사 서버에서 구동하는 데도 성공했다. 8월에는 엔비디아와 기술협력·지분투자 가능성을 놓고 초기 협상 중이라는 사실이 블룸버그를 통해 확인됐다.
딥엑스는 정책자금 의존도가 상대적으로 낮은 대신 구매주문(PO)으로 승부를 봤다. DX-M1 양산 1년 만에 9개국에서 77건, 1,300만 달러 이상의 상업용 PO를 확보했다. 현대차그룹, 바이두, 레노버 등이 실제 고객으로 이름을 올렸다.
퓨리오사AI는 세 회사 중 가장 큰 규모의 정책자금(약 3700억 원)을 받았다. 수은의 벤처기업 대상 첫 직접투자 대상이 되기도 했다. 그런데 그 다음 단계가 흐릿하다. 삼성SDS가 7월 퓨리오사AI의 RNGD를 탑재한 NPUaaS를 출시했다는 사실은 확인되지만, 실제 공급계약 규모나 사용량, 재구매 여부는 공개되지 않았다. 제품 및 서비스가 출시됐다는 사실과 그것이 반복 매출을 만들고 있다는 사실은 다른 이야기다.
이들 업체 프리IPO에서 확보한 정책자금 규모가 크다는 사실 자체는 성과가 아니다. 그 자금이 실제 칩 출하량과 고객 재구매로 이어졌다는 증거가 없는 한, 지금 단계는 손쉬운 자금 ‘조달’이지 ‘실적’이 아니다.
최근 RNGD 7000장 규모 스웨덴 스톡홀롬 데이터센터 제품 공급 협력 발표와, 관련 업체의 현지 착공 소식도 본지 확인 결과 실체가 불분명한 것으로 드러났다.(관련기사)
자금 구조, WTO 규정과 정면 위반 소지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정책자금 자체가 향후 중요한 시점에서 통상 분쟁의 씨앗이 될 수 있다.
WTO 보조금협정은 명확하다. 정부의 재정적 기여가 있고, 그 기여가 특정 기업이나 산업에 혜택을 부여하면 보조금으로 본다. 국민성장펀드와 수출입은행이 법을 고쳐가며 리벨리온·퓨리오사AI에 넣은 자금은 이 요건에 정확히 들어맞는다. 특정 기업, 특정 산업(AI 반도체)을 콕 집어 지원한 자금이기 때문이다.
전례가 있다. 2000년대 초 하이닉스 채무조정·출자전환을 두고 미국과 EU는 정부 보조금으로 판정했다. 미국은 하이닉스에 44.29%, EU는 34.8%의 상계관세를 부과했다. 같은 시기 삼성전자는 정부 개입이 없었다는 이유로 미소마진 판정을 받아 관세를 피했다. 정부 개입 여부와 방식이 실제 관세율을 가르는 기준이었다는 뜻이다.
수은법 개정에 담긴 ‘수익성 요건'(기준수익률 이상 예상수익률 요구)은 이 리스크를 의식한 설계로 보인다. 시장경제 투자자 원칙에 부합한다고 주장할 근거를 만들어 둔 것이다. 그러나 이 요건이 실제 상계관세 조사에서 방어 논리로 통할지는 검증된 바 없다.
| 항목 | 개정 전 | 개정 후 |
|---|---|---|
| 직접투자 요건 | 대출·보증과 연계된 사업에만 출자 가능 | 대출·보증 연계 폐지, 독립적 직접투자 가능 |
| 수익성 기준 | 별도 구체적 수익성 요건 명문화 안 됨 | 직접투자 시 “대상 사업의 예상수익률이 수출입은행이 정한 기준수익률 이상”일 것을 요건화 |
| 지분 취득 한도 | 의결권 있는 주식 15% 초과 취득 불가 (원칙) | 벤처기업(벤처기업육성에 관한 특별법)·중소기업(중소기업기본법)을 15% 한도 예외 대상으로 추가 |
| 간접투자 대상 | 자본시장법상 집합투자기구만 가능 | 벤처투자법상 벤처투자조합, 여신전문금융업법상 신기술투자조합까지 확대 |
| 간접투자 한도 | 투자기구별 집합투자재산의 25%로 제한 | 해당 한도 규정 삭제 |
| 해외공사 지분투자 | — | 수익률 요건 충족 + 공사 종료 후 5년 이내 순현금흐름이 0보다 큰 연도가 있어야 직접투자 가능(추가 요건) |
마찰은 이미 시작됐다
가정이 아니다. 미국은 이미 한국 정부의 AI 반도체 관련 조달 정책을 문제 삼았다. 지난해 과기정통부가 추경으로 진행한 GPU 입찰 사업—첨단 GPU 1만 장 확보, 국산 AI 반도체 조기 상용화 실증—을 미국은 디지털 무역장벽으로 지적했다.
한국 측 반론은 WTO 정부조달협정 제23조의 국가안보 예외다. AI를 국가안보 사안으로 규정해 협정 예외로 방어하겠다는 논리다. 그러나 이 논리는 미국이 받아들일 때만 유효하다. 미국이 받아들이지 않으면, 국민성장펀드·수은의 NPU 기업 투자도 같은 방식의 문제제기 대상이 될 수 있다.
WTO 정부조달협정(GPA) 제23조는 ‘협정에 대한 예외(Exceptions to the Agreement)’를 규정한다. 특히 국가안보·국방 관련 조달을 WTO 정부조달 규정의 적용에서 어떻게 취급할 수 있는지를 정한 조항이다. GPA 제23조는 기본적으로 ‘정부조달(procurement)’에 관한 예외이지, 정부의 기업 지분투자 자체를 일반적으로 면제하는 조항은 아니다.
따라서 수출입은행이 특정 민간기업에 RCPS 등을 통해 직접 투자하는 행위는 AI 국가안보 사안 예외 주장에 앞서 먼저 GPA의 ‘조달’ 개념에 해당하는지를 별도로 검토해야 한다.
산업통상부도 이 리스크를 이미 인지하고 있다. 2025년 12월, ‘첨단산업 분야 보조금 글로벌 현황 및 대응방향’ 연구용역을 발주했다. 2027년 3월 WTO 각료회의를 기점으로 보조금·산업정책 논의가 본격화될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딥엑스 또 다른 리스크
세 회사 중 정책자금 의존도가 가장 낮은 딥엑스에도 리스크가 없는 건 아니다. 다만 성격이 다르다.
딥엑스의 주요 해외 고객 중 하나가 중국 바이두다. 광학문자인식(OCR)과 머신비전 프로젝트에 딥엑스 칩이 쓰인다. 그런데 2026년 6월, 미 국방부는 중국 인민해방군을 지원한다는 이유로 바이두를 포함한 188개 중국 기업을 블랙리스트에 올렸다.
이 목록은 미 상무부의 수출통제 명단(Entity List)과는 별개다. 즉각적인 수출 제한 효력은 없다. 그러나 딥엑스 칩은 삼성전자 파운드리(5나노·2나노 공정)에서 생산되고, 이 공정에는 미국산 장비와 설계 툴이 들어간다. 만약 이 블랙리스트가 상무부 수출통제로 확대된다면, 딥엑스의 대중 공급망은 재수출통제(EAR) 이슈에 노출될 수 있다.
정부 특혜 정책자금이 만든 이중 리스크
| 리스크 유형 | 핵심 내용 | 현재 단계 |
|---|---|---|
| 국내 성과 착시 | 퓨리오사AI 등 정책자금 조달 규모를 성과로 홍보 | 반복 매출 근거 미공개 |
| WTO 보조금 판정 | 정부 재정기여 + 특정성 요건 충족 가능성 | 하이닉스 전례 존재, 아직 제소 없음 |
| 미국 통상 압박 | GPU 조달 정책을 디지털장벽으로 지적 | 국가안보 예외로 방어 중 |
| 정부 자체 리스크 인지 | 산업부 보조금 대응 연구용역 발주 | 2027년 3월 WTO 각료회의 대비 |
| 딥엑스 대중 노출 | 바이두 등 中 블랙리스트 기업向 공급 | 미 국방부 블랙리스트, 상무부 확대 시 리스크 |
정책금융은 매출 절벽의 초기 팹리스가 양산 단계까지 버티게 하는 역할이다. 이 자체를 부정할 이유는 없다. 그러나 지금 벌어지는 일은 두 가지가 동시에 진행 중이라는 사실이다.
국내에서는 정책자금 조달이 성과처럼 부풀려진다. 국외에서는 그 자금 구조 자체가 상계관세와 통상 분쟁의 표적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이미 정부 내부에서 제기되고 있다.
정부 당국과 비상장 업체들이 증명해야 할 것은 두 가지다. 정부의 특혜성 정책자금 지원은 이들 업체가 향후 반복해서 투자규모에 상응하는 매출를 창출할 수 있다는 객관적 판단에서 이뤄진 것인가. 투입된 정책자금은 국제 통상 규범과 충돌 없이 지속 가능한가. 지금까지 나온 자료로는 두 질문 모두 답을 얻지 못했다.
편집장/ Editor-in-Chief
국가 안보 정책과 연계된 과학기술 분야 혁신 등 영향력 있는 분석을 생산하고 있다. 주로 핵심 과학기술 연구, 글로벌 안보, 지정학, 해양 전략을 주제로 집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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