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르세스 장관, 미 방산업체서 ‘미국산 제품’ 강조
오스탈US 인수 추진하는 한화가 먼저 움직인 이유
피트 헤그세스(Peter Brian Hegseth ) 미국 전쟁부 장관의 최근 발언이 한국 조선·방산업계에 새로운 변수로 떠올랐다. 헤그세스 장관은 지난24일(현지시각) 미국 방산업체 오시코시를 방문한 자리에서 미국에서 생산하고 미국인을 고용하는 방위산업을 강조했다. 동시에 소수 대형 방산업체에 집중된 조달 구조를 바꾸고 더 많은 미국 기업이 경쟁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헤그세스는 이날 연설에서 1조5000억 달러 규모의 국방예산 구상을 언급하면서 오시코시 같은 기업과 함께 이를 실행하겠다고 강조했다. 연설을 마무리하며 그는 “더 이상 해외 이전이나 아웃소싱은 없다. 미국산, 미국 제조업, 미국 기술력, 미국 일자리를 지향한다(No more offshoring, outsourcing — American-made, American manufacturing, American muscle, American jobs.)”라고 정리했다.
표현만 보면 외국 기업에 대한 미국 방산시장 폐쇄로 해석될 수 있다. 특히 한국처럼 미국 방산시장 진출을 확대하고 있는 국가에는 민감한 메시지다. 그러나 이 발언을 미국의 동맹국 기업 배제라는 의미로만 해석하기에는 현재 미국 조선산업의 현실과 맞지 않는 부분이 있다.
미국 국방부가 직면한 문제는 단순한 외국산 무기 구매가 아니다. 미국은 방대한 국방예산을 투입하고도 무기와 함정을 원하는 속도로 생산하지 못하고 있다. 미 회계감사원(GAO)은 국방부가 무기체계뿐 아니라 배터리 등 비전투 물자를 포함해 20만 개가 넘는 글로벌 공급망에 의존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미국이 추진하는 ‘자유의 병기창(Arsenal of Freedom)’의 핵심 역시 해외 공급망을 일시에 차단하는 것이 아니라 미국 내 생산능력과 공급망을 다시 구축하는 데 있다.
이런 맥락에서 헤그세스의 ‘미국이 만든(American-made)’ 발언은 한국 조선업계에 단순한 경고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미국이 향후 방산 조달에서 요구하는 기준이 한국 기업이냐 미국 기업이냐가 아니라, 미국 안에서 어느 정도의 생산능력과 공급망을 확보했느냐로 이동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반대로 미국 기업의 정의에 소유구조나 지배권까지 포함될 경우 한국 기업의 미국 진출 전략은 훨씬 복잡해진다.
이 불확실성을 가장 먼저 시험하고 있는 기업이 한화다.
한화는 이미 미국 조선산업의 내부로 진입했다. 한화오션은 미국 필라델피아의 필리 조선소(Philly Shipyard)를 인수한 뒤 미국 내 생산기반 확대에 나섰고, 미국 해군 사업 참여도 확대하고 있다. 최근에는 호주 글로벌 조선 방위산업체 오스탈(Austal)의 미국 사업부 인수를 추진하면서 미국 해군과 해안경비대 함정 시장에 대한 접근성을 더욱 높이려 하고 있다.
이러한 움직임을 단순히 미국 시장 확대를 위한 해외 인수합병으로 보면 전략의 일부만 보게 된다. 미국이 ‘미국에서 생산하고 미국인을 고용하는 기업’을 우선하는 방향으로 움직인다면 미국 조선소 자체를 보유하는 것은 가장 직접적인 대응책이 된다. 한국에서 건조한 선박을 미국에 수출하는 구조보다 미국 내 조선소에서 미국 인력과 공급망을 활용해 생산하는 구조가 미국 정부의 정책 목표에 더 가깝기 때문이다.
한화디펜스USA가 미 육군에 K9 기반 차륜형 자주포 시제품을 공급하면서 “onshore” 생산을 강조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한화는 한국에서 축적한 기술과 공정을 미국의 생산기반으로 옮기는 방식으로 조선, 탄약, 지상무기 등 사업 영역을 넓히고 있다. 이는 단순한 수출기업의 현지 법인 설립과는 성격이 다르다. 한국에서 개발하고 미국에 판매하는 기존 모델에서 벗어나 한국의 기술과 생산 시스템을 미국 산업기반에 이식하는 모델에 가깝다.
문제는 여기서부터다.
한국 기업이 미국에서 생산하면 미국 국방부가 이를 ‘미국산’으로 인정할 것인지, 미국 법인이 미국 조달시장에서 어느 정도까지 미국 기업과 동등한 지위를 확보할 수 있는지는 아직 명확하지 않다. 헤그세스 장관의 발언에서도 소유구조와 외국 자본의 범위는 구체적으로 규정되지 않았다. 미 국방부 역시 한국 기업이 미국에서 생산·투자·고용할 경우 입찰에 계속 참여할 수 있는지에 대해 추가적인 기준을 제시하지 않았다.
따라서 앞으로 MASGA를 둘러싼 핵심 경쟁은 단순한 수주 경쟁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 미국 정부가 현지 생산을 어느 수준까지 요구할 것인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외국 기업의 지배권을 어디까지 허용할 것인지가 더 중요한 변수가 된다.
이 기준에서는 한화의 선행투자가 상당한 의미를 갖는다. 필리 조선소에 이어 오스탈US(Austal US)까지 확보한다면 한화는 한국의 대형 조선소와 미국 내 복수의 조선·방산 거점을 연결하는 구조를 만들 수 있다. 한국의 설계·생산관리 역량과 미국의 생산시설·인력·조달 네트워크를 결합하는 형태다.
이는 한화가 미국 방산시장에서 경쟁하는 방식 자체를 바꿀 수 있다. 한국에서 생산한 제품을 미국에 수출하는 기업이 아니라 미국에서 생산하는 방산기업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 HD현대의 전략은 다소 다른 방향으로 전개될 가능성이 있다. HD현대의 최대 강점은 미국 내 조선소 보유 여부보다 세계적인 규모의 상선·특수선 생산 경험과 생산관리 능력이다. 미국 조선업이 부족한 것은 단순히 도크나 자본만이 아니라 숙련인력, 블록 생산, 공정관리, 공급망 운영, 납기관리 등 대량생산을 뒷받침하는 산업 시스템이다.
따라서 HD현대에는 미국 조선산업에 한국식 생산 시스템을 얼마나 효과적으로 이식하느냐가 중요해질 수 있다. 미국 내 생산기반을 확대하면서 한국에서 검증된 생산성과 자동화 기술을 미국 조선소의 경쟁력 향상과 연결하는 방식이다. 한화가 미국 조선산업의 ‘소유와 운영’에 상대적으로 무게를 둔다면 HD현대는 ‘생산 시스템과 기술’에서 경쟁력을 확보할 여지가 있다.
삼성중공업 역시 미국 조선업과의 협력을 확대하고 있지만 현재의 경쟁구도에서는 한화와 HD현대에 비해 선택지가 제한적이다. 미국의 정책이 군함뿐 아니라 군수지원선, 특수선, LNG선, MRO 등으로 확대될 경우 기회가 커질 수 있지만, 미국 현지 생산기반이 중요한 조달 조건으로 굳어지면 추가적인 현지화 전략이 필요해질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한국 조선업계가 더 주목해야 할 문제는 미국 시장에서 수주를 얼마나 늘리느냐가 아니다. 수주 증가가 한국 조선산업의 성장으로 얼마나 연결되는가다.
예를 들어 미국 정부가 한국 기업의 미국 법인에 함정을 발주하고 해당 함정이 미국에서 미국 노동자와 미국 기자재를 이용해 건조된다면 미국의 국방비는 미국 내에서 대부분 순환하게 된다. 한국 본사에는 지분수익이나 기술·관리 수익이 귀속될 수 있지만 국내 조선소의 생산량과 고용이 반드시 증가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장기적으로는 반대의 효과도 가능하다. 한국 기업이 미국 조선소에 한국의 생산관리 기술과 자동화 시스템을 이전하면서 미국의 생산성이 향상되면, 미국 조선산업의 경쟁력이 높아질 수 있다. 이는 한미 조선협력의 본래 목적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한국 조선업의 상대적인 경쟁우위를 미국으로 이전하는 결과가 될 수도 있다.
이 때문에 MASGA를 ‘한국 조선업의 대미 수출 확대’로만 평가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실질적으로는 한국의 자본과 기술을 미국의 산업기반으로 이전하는 산업 재편 프로젝트에 가깝다.
미국 입장에서는 합리적인 선택이다. 중국이 세계 조선시장에서 압도적인 생산능력을 확보한 상황에서 미국이 자국 조선산업을 단기간에 독자적으로 재건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 한국과 일본 등 동맹국의 자본과 기술을 활용하면서 동시에 미국 내 생산기반을 확대하는 것이 시간과 비용 측면에서 더 효율적이다.
문제는 한국이 그 대가로 무엇을 확보하느냐에 있다.
한국 기업이 미국에 공장을 짓고 미국인을 고용하는 것만으로 MASGA가 성공했다고 평가해서는 안 된다. 한국의 조선업체가 미국 사업을 확대하면서도 핵심 설계능력, 생산기술, 국내 연구개발, 기자재 공급망, 국내 생산기반을 유지하고 확대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MASGA는 한국 조선업의 미국 진출이 아니라 미국 조선산업 재건을 위한 한국 자본과 기술의 공급 프로젝트로 변질될 가능성이 있다.
한화의 전략은 이 점에서 가장 앞서 있지만 동시에 가장 복잡한 시험대에 올라 있다. 미국 조선소를 직접 확보함으로써 ‘American-made’ 요구에 대응할 수 있는 반면, 미국 사업이 확대될수록 한화의 조선 생산과 방산 역량에서 미국 현지 비중도 커질 수밖에 없다. 한화가 미국 조선산업의 핵심 기업으로 성장하는 것과 한국 조선산업의 경쟁력이 확대되는 것은 동일한 결과가 아니다.
결국 헤그세스의 발언이 던진 가장 중요한 질문은 “한국 조선사가 미국에서 배를 만들 수 있는가”가 아니다.
미국이 ‘American-made’를 명분으로 자국 내 생산을 확대하는 과정에서 한국 기업의 미국 현지화를 어디까지 요구할 것인지, 그리고 한국 기업이 미국 생산기반을 확대하면서도 한국에 핵심 기술과 고부가가치를 얼마나 남길 수 있는지가 핵심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MASGA의 다음 단계는 한미 조선협력의 규모보다 산업 가치의 귀속을 둘러싼 협상이 될 가능성이 높다. 한화는 미국 조선소와 방산기업을 직접 확보하는 전략으로 가장 먼저 그 시험을 받고 있고, HD현대는 생산 시스템과 기술 경쟁력으로, 삼성중공업은 특수선과 MRO 등 선택과 집중으로 대응해야 하는 상황이다.
미국이 원하는 것은 한국에서 만든 배를 더 많이 사는 것이 아니다. 한국이 가진 조선 생산능력을 미국 안으로 끌어오는 것이다.
그리고 이 지점에서 MASGA는 한국 조선업의 수출 전략이 아니라, 한미 양국의 조선산업 구조 자체를 바꾸는 프로젝트가 되고 있다.
편집장/ Editor-in-Chief
국가 안보 정책과 연계된 과학기술 분야 혁신 등 영향력 있는 분석을 생산하고 있다. 주로 핵심 과학기술 연구, 글로벌 안보, 지정학, 해양 전략을 주제로 집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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