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영·호주 안보·국방 협력체, 美 SSN 호주 공급약속
한화 인수 방산업체 오스탈USA, 美 SSN 모듈 생산도
미국의 조선산업 재건 정책이 한국 조선업계에 새로운 시장을 열고 있다. 표면적으로는 미국 내 조선소와 생산설비를 확충하는 정책이지만, 그 배경에는 미 해군이 요구하는 함정 생산 속도를 자국 산업기반만으로 감당하기 어렵다는 현실이 자리 잡고 있다.
특히 핵잠수함 생산은 미국의 병목이 가장 선명하게 드러나는 분야다. 미 해군은 전략핵잠수함(SSBN)인 컬럼비아급 1척과 공격형 핵추진잠수함(SSN)인 버지니아급 2척을 매년 건조하는 ‘1+2’ 생산체제를 목표로 하고 있다. 그러나 실제 버지니아급 생산 속도는 2022년 이후 연간 약 1.1~1.2척에 머물렀다.
미 해군의 표현은 더욱 직접적이다. 미 해군의 장기 조선계획은 “1척의 컬럼비아급과 2척의 버지니아급” 생산을 산업기반의 최우선 과제로 규정하고 있다. USNI News에 따르면 해군은 현재 약 1.3척 수준인 버지니아급 생산 속도가 2032년께 연 2척에 도달할 것으로 보고 있다.
| 구분 | 명칭 | 핵심 임무 | 대표 함정 |
|---|---|---|---|
| SSBN | 탄도미사일 핵잠수함 | 핵억제·전략핵전력 | 미국 오하이오급, 컬럼비아급 |
| SSN | 공격형 핵추진잠수함 | 적 잠수함·수상함 공격, 정보수집, 특수전 | 미국 버지니아급, 시울프급 |
| SSGN | 유도미사일 핵잠수함 | 대지공격·순항미사일 운용 | 미국 오하이오급 개조형 |
잠수함 생산 문제 ‘조선소 부족’ 아닌 공급망
미국의 문제를 단순히 조선소 부족으로 보는 것은 정확하지 않다. 핵심은 선체를 최종 조립하는 조선소와 그 주변에 연결된 수천 개의 공급업체, 숙련인력, 모듈 제작시설을 동시에 확대해야 한다는 데 있다.
미 해군해상체계사령부(NAVSEA)는 잠수함 생산을 거의 두 배로 늘리기 위해 매년 350만~450만 시간의 추가적인 잠수함 모듈 제작 및 의장 작업이 필요하다고 공식적으로 밝혔다. 이는 기존 조선소의 생산능력만 조금 늘리는 방식으로는 해결하기 어려운 규모다.
더 큰 문제는 생산성이다. 미 해군 잠수함 프로그램 책임자인 로버트 고셔 중장은 올해 4월 USNI News와의 인터뷰에서 초기 버지니아급 잠수함 건조에는 약 1,300만 인시가 필요했지만 현재 건조 중인 함정에는 약 7,000만 인시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를 “5배 증가”라고 표현했다.
미국은 이에 대응해 앨라배마주에 자동화 생산시설을 구축하는 등 분산형 제조체계를 확대하고 있다. 미 해군은 2026년 3월 앨라배마에 문을 연 220만 평방피트 규모의 ‘미래형 조선공장’이 버지니아급과 컬럼비아급 잠수함용 부품을 대량 생산할 것이라고 밝혔다.
따라서 한화의 오스탈 USA 인수 추진은 단순한 미국 조선소 인수와는 성격이 다르다. 오스탈 USA는 미 해군과 이미 계약 관계를 구축한 미국 내 방산 조선업체이며, 잠수함 모듈 생산에도 관여하고 있다.
AUKUS 미·영·호주 3개국 안보 국방 협력체 SSN 생산 부담
미국이 생산능력 확대를 서두르는 또 하나의 이유는 오커스(AUKUS)다. AUKUS는 미국·영국·호주 3개국이 2021년 출범시킨 안보·국방 협력체다. 특히 중국의 해양 영향력 확대를 견제하고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군사적 억지력을 강화하는 것이 핵심이다.
AUKUS에 따라 미국은 호주에 버지니아급 핵추진잠수함을 공급해야 하며, 이에 따라 이미 한계에 도달한 미국의 잠수함 생산기반에 추가적인 부담이 발생하고 있다. 오커스 필러1은 호주에 미국산 버지니아급 핵추진잠수함을 제공하고, 장기적으로 호주가 자체적으로 차세대 핵추진잠수함을 확보하도록 하는 사업이다.
당초 계획보다 구체적인 공급 방식에도 변화가 생겼다. 미국과 호주는 올해 6월 호주가 기존 계획 대신 미국 해군에서 운용 중인 버지니아급 3척을 인수하는 방향으로 계획을 수정했다.
CRS가 분석한 오커스 계획 역시 미국이 호주에 3~5척의 버지니아급 잠수함을 판매하는 동시에 미국 해군용 대체 잠수함을 추가 건조해야 한다는 구조다. 즉 오커스는 미국 잠수함 산업기반에 추가적인 생산 부담을 요구한다.
미 해군이 올해 7월 제너럴다이내믹스 일렉트릭보트와 HII에 9척의 버지니아급과 5척의 컬럼비아급을 포함한 총 766억 달러 규모의 계약을 발주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계약에는 조선소 생산성 개선을 위한 50억 달러가 별도로 포함됐다.
결국 미국의 선택지는 명확해지고 있다. 자국 조선소를 증설하는 동시에 외부 자본과 기술, 인력을 끌어들여 생산망을 분산시키는 것이다.
한화 오스탈 USA 인수, ‘백도어’아닌 전략적 공급망 확보
한화의 오스탈 USA 인수 제안은 이 같은 미국의 산업정책 변화와 맞물린다.
한화디펜스USA는 지난 8월 오스탈의 미국 사업을 10억5000만~12억 달러에 인수하겠다는 예비·비구속적 제안을 제출했다. 대상은 앨라배마주 모빌의 오스탈 USA 조선소와 미국 내 지원사업이며, 호주·필리핀·베트남 사업은 포함되지 않는다.
한화는 이미 2024년 1억 달러를 들여 필리조선소를 인수했다. 오스탈 USA까지 확보할 경우 미국 동부와 남부에 생산거점을 동시에 확보하게 된다.
미 해군 전문지 Naval News는 앞서 한화의 오스탈 USA 인수를 미국 시장에 진입하기 위한 “backdoor”로 평가한 바 있다. 미국 군함 건조시장에는 조달 규정과 안보 규제 등 높은 진입장벽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다만 현재 상황에서는 ‘우회 진입’이라는 표현만으로는 부족하다. 한화가 노리는 것은 조선소 자체보다 미국 방산 조달망과 생산기반에 대한 접근권에 가깝다.
오스탈 USA는 미 해군·해안경비대 함정을 건조해온 업체이며, 미 해군 핵잠수함용 모듈 생산과도 연결돼 있다. Naval News는 오스탈의 미국 사업이 2026년 표면함 사업의 손실에도 불구하고 핵잠수함 모듈 제조에서는 높은 수익성을 유지하고 있다고 전했다.
따라서 한화가 이 회사를 인수할 경우 미국 조선산업의 부족한 생산공간과 공급망을 확보하는 동시에 미 해군과의 장기적인 사업 관계를 확대할 수 있다.
MASGA, 구호에서 산업 플랫폼으로
한국의 기회가 커지는 배경에는 미국의 정책 변화뿐 아니라 한국 정부와 조선업계의 대규모 투자 계획도 있다.
한미 양국은 지난 7월 워싱턴에서 한미 조선협력센터(KUSPC)를 공식 출범시켰다. 한국 정부가 지난해 한미 협상 과정에서 약속한 1,500억 달러 규모의 미국 조선산업 투자, 이른바 MASGA 프로젝트를 실제 사업으로 연결하기 위한 플랫폼이다.
한국 정부는 KUSPC 출범과 함께 공급망, 인력 양성, 공동 기술개발, ‘Team Korea’ 구축 등 4개 분야에서 15건의 양해각서를 체결했다고 밝혔다.
이는 기존의 단순한 선박 수주와 다른 접근이다. 미국이 원하는 것은 한국에서 미국 선박을 대신 만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미국 내 조선 생산능력을 회복시키는 것이다.
한국 조선업계 역시 이 점에 맞춰 전략을 바꾸고 있다.
MRO 미 해군 레퍼런스, 함정시장 진입의 첫 관문
가장 현실적인 진입로는 현재 MRO다.
HD현대중공업과 한화오션은 2026년 들어 각각 2건씩 미 해군 함정 MRO 사업을 수주했다. 지난해 한 해 동안 HD현대중공업이 1건, 한화오션이 2건을 수주했던 것과 비교하면 속도가 빨라졌다.
2026년 7월 기준 국내 조선업계의 미 해군 MRO 실적은 한화오션 6건, HD현대중공업 3건, HJ중공업 1건 등 총 10건으로 집계됐다.
이 사업의 전략적 의미는 수익 그 자체보다 ‘미 해군 레퍼런스’에 있다.

실제 함정을 정비하면서 미국의 품질 기준, 군수 조달 절차, 작업·보안 체계, 납기 관리 등을 경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향후 군수지원함과 수상함 건조, 설계 및 부품 공급으로 사업영역을 확대할 수 있는 기반이 만들어진다.
Naval News는 이미 미국 해군이 한국 조선소의 역량을 직접 검토하는 단계에 들어갔다고 보도했다. 미 해군은 올해 7월 한국 조선업체를 대상으로 군수지원함뿐 아니라 구축함급 수상전투함 건조 능력까지 확인하기 위한 RFI를 발행했다. 한화오션과 HD현대중공업은 두 분야 모두에 응답했고 삼성중공업은 군수지원함 분야에 응답했다.
이는 의미가 크다. 미국이 외국 조선소에 미 해군 함정 건조 가능성을 타진하는 것은 100년 넘게 유지돼온 미국 내 군함 건조 체계의 변화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Naval News는 이를 두고 미국이 사실상 “더 이상 폐쇄적인 시장이 아닌(closed market no more)” 단계에 들어가는 것으로 분석했다.
한국이 필요한 이유는 ‘가격’보다 생산성
한국 조선업의 경쟁력은 단순히 인건비가 싸다는 데 있지 않다. 핵심은 대형 선박을 반복적으로, 일정한 품질과 납기로 생산할 수 있는 산업 시스템이다.
한국 조선소들은 블록 건조, 생산 자동화, 공정관리, 설계 데이터 활용, 공급망 통합 등에서 높은 수준의 대량생산 체계를 구축해왔다. 미국이 현재 필요로 하는 것도 바로 이 생산 시스템을 자국 산업기반에 이식하는 것이다.
실제로 미 해군은 최근 분산형 조선과 모듈 생산 확대를 핵심 대책으로 추진하고 있다. 한국 조선업계의 생산방식과 미국의 분산형 생산전략 사이에 접점이 생기는 이유다.
한화가 필리조선소와 오스탈 USA를 동시에 확보하려는 전략도 같은 방향으로 해석할 수 있다. 미국의 기존 생산기반을 활용하면서 한국식 생산관리와 자동화 기술을 접목하는 방식이다.
‘K-조선 잭팟’이 되려면 넘어야 할 장벽
다만 이를 곧바로 한국 조선업의 ‘잭팟’으로 규정하는 것은 이르다.
가장 큰 변수는 미국의 법과 정치다. 미국은 전통적으로 군함 건조를 자국 조선소에 제한해 왔으며, 해외 조선소에서 직접 미 해군 전투함을 건조하려면 별도의 법적·안보적 절차가 필요하다.
Naval News 역시 한국 조선소의 미 해군 함정 건조 가능성이 현실화하려면 미 의회 승인과 국가안보 관련 예외 조치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또 미국 조선업계의 반발도 변수다. 미국 정부가 한국과 일본 조선소의 생산성을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미국 내 일자리와 방산 공급망을 해외 기업에 넘긴다는 정치적 논란을 피하기 어렵다.
한화의 오스탈 USA 인수 역시 아직 확정된 거래가 아니다. 오스탈 이사회는 4주간의 실사 기간을 부여했으며, 최종 거래에는 미국 외국인투자심의위원회(CFIUS)와 방산 보안 관련 승인 등이 필요하다.
따라서 오스탈 USA 인수의 진짜 가치는 인수 가격이나 조선소 숫자가 아니라, 한화가 미국 방산 조선 공급망 안으로 얼마나 깊숙이 들어갈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미국의 다급함…한국 공급능력에 MASGA 투자
현재 나타나는 일련의 움직임을 연결하면 미국 조선산업의 구조적 문제가 선명해진다.
미국은 중국과의 해양 경쟁을 고려해 함대 규모를 확대해야 하지만, 핵잠수함부터 수상함까지 생산능력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미 해군은 버지니아급 생산을 연 2척까지 끌어올리는 데 2030년대 초반까지 시간이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반면 한국은 이미 세계 최대 수준의 상업용 선박 생산능력과 대형 조선소를 보유하고 있다. 여기에 미국 현지 조선소 인수, MRO 실적, 설계·인력 양성 협력, MASGA 투자까지 결합되고 있다.
한화의 오스탈 USA 인수 추진은 이 구조적 변화의 상징적인 사례다. 미국은 한국 자본을 필요로 하고, 한국은 미국 방산시장에 진입하기 위해 미국 내 생산기반을 필요로 한다.
따라서 향후 한미 조선협력의 핵심 경쟁은 ‘한국에서 얼마나 많은 배를 만들어 미국에 수출하느냐’가 아니다. 미국 내 조선소를 누가 확보하고, 누가 생산성을 끌어올리며, 누가 미 해군의 공급망에 장기적으로 편입되느냐가 될 가능성이 높다.
이 관점에서 보면 MASGA와 KUSPC, 미 해군 MRO, 한화의 필리조선소·오스탈 USA 인수는 각각 별개의 사업이 아니다. 미국 조선산업 재건이라는 하나의 거대한 산업정책 안에서 한국 조선업이 생산기반과 기술, 자본을 제공하는 구조로 재편되는 과정으로 볼 수 있다.
한국 조선업에 열린 시장은 분명 크다. 그러나 그 시장의 최종 승자는 미국의 부족한 생산능력을 단순히 보충하는 기업이 아니라, 미국 현지에서 생산·정비·설계·인력·공급망을 동시에 구축할 수 있는 기업이 될 가능성이 높다.
미국의 ‘다급함’이 한국에 기회를 제공하고 있지만, 그 기회를 실제 산업적 우위로 전환하는 것은 이제부터의 과제다.
편집장/ Editor-in-Chief
국가 안보 정책과 연계된 과학기술 분야 혁신 등 영향력 있는 분석을 생산하고 있다. 주로 핵심 과학기술 연구, 글로벌 안보, 지정학, 해양 전략을 주제로 집필한다.
Contact: navy@scimonitors.com / Linked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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