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자컴퓨터는 오랫동안 미래 정보기술의 궁극적 목표로 여겨져 왔다. 양자역학의 원리를 활용해 정보를 처리하는 이 차세대 컴퓨터는 특정 문제에서 기존 슈퍼컴퓨터조차 따라가기 어려운 계산 능력을 발휘할 것으로 기대된다. 그러나 현실 세계에서 양자컴퓨터를 안정적으로 작동시키는 일은 생각보다 훨씬 어렵다.
문제의 핵심은 양자정보의 기본 단위인 ‘큐비트(qubit)’에 있다. 큐비트는 온도 변화, 전자기파, 자기장과 같은 주변 환경의 미세한 교란에도 민감하게 반응한다. 이러한 외부 간섭은 큐비트의 양자상태를 무너뜨려 계산 오류를 일으키며, 양자컴퓨터 상용화의 가장 큰 장애물로 꼽혀 왔다.
과학자들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다양한 양자 오류 정정 기술을 개발해 왔지만, 최근에는 보다 근본적인 해결책으로 ‘마요라나 모드(Majorana modes)’가 주목받고 있다.
환경 잡음에도 흔들리지 않는 특별한 양자상태
마요라나 모드는 이론적으로 외부 교란에 매우 강한 특성을 지닌 양자상태다. 일반적인 양자정보가 특정 위치에 저장되는 것과 달리, 마요라나 모드는 시스템 전체의 위상(topology)에 정보가 분산되어 저장된다. 덕분에 국소적인 결함이나 잡음이 발생하더라도 정보가 쉽게 손상되지 않는다.
이러한 특성 때문에 마요라나 모드는 ‘위상 양자컴퓨팅(topological quantum computing)’의 핵심 구성요소로 오랫동안 연구되어 왔다. 특히 마요라나 입자를 이용한 큐비트는 외부 환경의 영향을 자연스럽게 억제할 수 있어 ‘결함 허용(fault-tolerant) 양자컴퓨터’ 구현의 유력한 후보로 평가받는다.
하지만 실제 물질에서 이러한 강인함이 얼마나 유지되는지는 아직 충분히 검증되지 않은 상태였다.
원자 한 줄로 만든 실험실 속 양자 시스템
독일 함부르크대학교 연구진은 최근 발표한 연구에서 마요라나 모드의 내구성을 직접 검증했다. 연구팀은 초전도체인 니오븀(Nb) 기판 위에 수 나노미터 두께의 은(Ag) 층을 형성하고, 그 위에 비스무트-은 합금(BiAg₂) 원자층을 제작한 새로운 하이브리드 물질 플랫폼을 구축했다.
연구진은 약 4켈빈(-269℃)의 극저온 환경에서 주사터널링현미경(STM)과 주사터널링분광법(STS)을 활용해 물질의 원자 구조와 전자 상태를 정밀 분석했다.
관측 결과, 표면의 비스무트 원자들은 매우 규칙적인 결정 구조를 형성하고 있었지만, 내부 은 층의 불규칙성으로 인해 나노미터 규모의 전자적 불균일성이 존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즉, 실제 양자소자에서 피하기 어려운 ‘무질서(disorder)’가 자연스럽게 포함된 환경이었다.
이후 연구진은 STM 탐침을 이용해 개별 철(Fe) 원자를 하나씩 배치하며 완벽하게 직선 형태의 원자 사슬을 제작했다. 이러한 1차원 스핀 체인(spin chain)은 마요라나 모드를 생성할 수 있는 이상적인 실험 플랫폼이다.
무질서 속에서도 살아남은 마요라나 상태
실험 결과는 놀라웠다.
철 원자 사슬의 길이가 일정 수준을 넘어서자 사슬 양 끝에서 ‘제로 에너지 상태(zero-energy state)’가 명확하게 관측됐다. 이는 마요라나 준입자(Majorana quasiparticle)의 대표적인 신호로 알려져 있다.
더욱 중요한 사실은 주변 물질 내부에 상당한 수준의 무질서가 존재했음에도 이 신호가 안정적으로 유지됐다는 점이다.
연구진은 실험과 함께 수행한 물질 특화 이론 시뮬레이션을 통해 이러한 결과를 재현했으며, 관측된 현상이 실제 마요라나 모드의 위상학적 보호(topological protection)에 의해 발생했음을 확인했다.
연구를 이끈 하림 장(Harim Jang) 박사와 롤란트 비젠당어(Roland Wiesendanger) 교수는 “마요라나 준입자가 다양한 종류와 강도의 무질서 환경에서도 높은 안정성을 유지한다는 사실을 직접 실험으로 입증한 것이 이번 연구의 가장 중요한 성과”라고 설명했다.
결함 허용 양자컴퓨터를 향한 중요한 이정표
이번 연구는 오랫동안 이론적으로만 예측되어 왔던 마요라나 모드의 강인함을 실제 물질 시스템에서 확인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양자컴퓨터 개발의 가장 큰 난제 중 하나는 오류를 억제하는 것이다. 현재의 양자 프로세서는 계산 과정에서 발생하는 오류를 수정하기 위해 많은 수의 보조 큐비트를 필요로 한다. 그러나 마요라나 기반 큐비트가 실용화된다면, 정보 자체가 위상학적으로 보호되기 때문에 훨씬 적은 비용으로 안정적인 양자 연산이 가능해질 수 있다.
연구진은 앞으로 마요라나 상태의 안정성을 더욱 향상시키는 방향으로 하이브리드 물질 플랫폼을 개선하는 한편, 양자정보 처리에 필수적인 ‘브레이딩(braiding)’ 연산 과정에서 무질서가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연구할 계획이다.
양자컴퓨터가 실험실을 넘어 산업 현장으로 진출하기 위해서는 아직 넘어야 할 기술적 장벽이 많다. 그러나 이번 연구는 적어도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보여준다. 자연이 제공하는 위상학적 보호 메커니즘을 활용한다면, 양자정보를 외부 잡음으로부터 지켜낼 수 있다는 것이다.
결함 허용 양자컴퓨터라는 오랜 목표를 향한 여정에서, 마요라나 입자는 다시 한번 가장 유망한 길잡이로 떠오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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