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이스X보다 높은 PSR?…정책자금 집행 후 600배 밸류에이션
정부가 국내 NPU(신경망처리장치) 스타트업 퓨리오사AI에 약 8000억원 규모의 전례 없는 자금을 투입하기로 결정하면서 기술 업계와 투자 시장이 발칵 뒤집혔다. 정부는 HBM4 기반 차세대 AI 칩 개발과 양산을 지원해 글로벌 반도체 전쟁에서 주도권을 잡겠다는 ‘전략적 투자’를 명분으로 내세웠다. 이 전례없는 몰아주기 투자를 어떻게 보아야 할까. 실리콘밸리 테크 저널들과 글로벌 싱크탱크, 국내외 벤처투자(VC) 업계의 시선에 따르면 이번 결정이 전형적인 ‘정부 주도 승자 선정(Picking Winners)’의 오류이자, 시장 생태계를 왜곡하는 위험한 베팅이다.
가장 먼저 도마 위에 오른 것은 자금 집행의 극단적인 집중도다. 단일 투자 8000억원은 국내 AI 스타트업 역사상 전례를 찾을 수 없는 사상 최대 규모다. 피터슨 국제경제연구소(PIIE) 등 글로벌 싱크탱크 산업정책 리포트에 따르면, 정부가 민간 시장의 자율적 검증을 앞질러 특정 기업을 ‘국가대표’로 낙점하는 방식은 유망한 동종 경쟁사들의 투자 유치를 방해하고 시장의 진화를 저해하는 부작용을 낳는다. 현재 국내에는 리벨리온, 딥엑스, 모빌린트 등 저마다의 기술력을 가진 NPU 기업들이 치열하게 생존 경쟁을 벌이고 있다. 정부의 이 같은 투자 행태는 특정 기업 몰아주기식 ‘인위적 독점’을 유발한다.

‘승자 선정’의 덫과 정치 금융의 그림자
여기에 퓨리오사AI를 둘러싼 과거 유력 정치인들의 행보가 겹치면서 ‘정치 금융’ 및 특혜 논란도 불가피하다. 퓨리오사AI는 지난 대선 국면이던 2021년 당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통령 후보가 혁신 스타트업의 상징으로 직접 사무실을 방문해 정책 간담회를 개최하며 주목을 받았다. 이후 정동영 현 통일부장관(당시 국회의원), 박영선 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등 현 여권 인사들이 잇따라 이 업체를 거론, 정책적 지원 필요성을 역설하며 영향력을 과시해 왔다.
기술 업계 일각에서는 유독 이 회사에 정치인들의 발길이 잦았던 점을 들어, 이번 8000억원이라는 파격적인 지원 규모가 순수한 기술적 검증의 결과물인지, 아니면 과거부터 누적된 ‘정치적 후광’이 작용한 결과인지 의구심을 던지고 있다. 정치권의 치적 홍보 쇼케이스로 소비되던 초기 기업에 사상 최대의 국가 자본이 흘러 들어가는 구조에 대해 시장은 냉소적이다. 정권의 성향이나 정치적 역학 관계에 따라 AI 정책 지원 사업의 공정성이 흔들릴 수 있다는 지적이다.
과거 메타(Meta)의 인수 제안을 거절한 극적인 서사 역시 정부 지원 의존 생존 현실과 오버랩 된다. 퓨리오사는 2025년 약 8억 달러(약 1조 2000억원)의 메타 인수 제안을 거절한 것으로 알려졌다. 실리콘밸리 기술 분석 매체 디인포메이션(The Information) 분석에 따르면, 메타의 인수는 단순한 자금 유입이 아니라 전 세계에서 가장 거대한 AI 생태계인 ‘Llama’의 핵심 하드웨어 파트너로 직행할 기회였다. 글로벌 빅테크를 거절하고 결국 정부 정책 자금에 생존을 의지하는 현실은 구조적 모순이다. 엔비디아의 200억 달러(약 29조원) 베팅 글록(gorq)이나, 인텔의 삼바노바(sambanova) 등 1위~3위 업체들이 모두 빅테크와 협업, 막대한 투자를 받은 점과는 정반대의 행보다. 글로벌 표준 생태계에 편입되지 못하고 국가 보조금 체계 내에 갇힌 기업은 결국 ‘우물 안’에 고립될 위험이 크다.
업력 8년, 매출57억불과…부풀린 미래 가치 뿐
퓨리오사AI 논란에서 상대적으로 덜 주목받지만 투자 업계가 민감하게 바라보는 부분은 기업가치(Valuation)의 적정성이다. 기술력과 국가 전략산업으로서의 중요성을 인정하더라도, 정부가 과연 적정한 가격에 투자했느냐는 질문은 별개의 문제다. 공개된 재무자료에 따르면 퓨리오사AI의 2024년 연결 기준 매출은 약 57억원 수준에 불과했다. 이를 기준으로 투자 직전 기업가치 3조원을 적용하면 주가매출비율(PSR)은 500배를 넘는다. 투자 완료 이후 기준으로는 600배를 웃도는 수준이다. 일부 투자 커뮤니티에서는 이를 두고 “세계 최고 수준의 성장 프리미엄이 반영된 가격”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실제로 글로벌 우주항공 기업인 스페이스X조차 최근 시장 평가 기준 PSR이 100배 안팎으로 알려져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단순 매출 대비 기업가치만 놓고 볼 때 퓨리오사AI가 훨씬 공격적인 밸류에이션을 인정받은 셈이다.
더욱 논쟁적인 부분은 재무구조다. 퓨리오사AI는 현재 전형적인 딥테크 스타트업 구조를 가지고 있으며, 연구개발과 양산 준비 과정에서 대규모 적자를 기록하고 있다. 회사 측은 상당 부분이 상환전환우선주(RCPS) 회계 처리 과정에서 발생한 비현금성 평가손실이라고 설명하지만, 감사보고서에서는 계속기업(Going Concern)으로서의 존속 가능성에 유의미한 불확실성이 존재한다는 의견이 제시되기도 했다. 물론 다른 업체 역시 초기 수년간 대규모 적자를 기록했다는 반론도 가능하다. 그러나 비판론자들은 민간 벤처캐피털이 감수할 수 있는 고위험·고수익 베팅과 국민 세금이 투입되는 정책금융의 위험 허용 범위는 동일할 수 없다고 지적한다. 결국 이번 투자는 국가 차원의 미래 가치 베팅에 가깝다. 문제는 그 미래 가치가 아직 시장에서 충분히 검증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더욱 치명적인 문제는 하드웨어가 아닌 전방 시장 생태계의 부재다. 가트너(Gartner)의 글로벌 AI 인프라 보고서가 지적하듯, 엔비디아가 시장을 독점하는 비결은 GPU 칩 자체가 아니라 전 세계 개발자들을 묶어둔 소프트웨어 생태계 ‘CUDA’와 이를 수만 장씩 사주는 하이퍼스케일러(빅테크 클라우드 기업)의 결합에 있다. 반면 한국은 네이버, 카카오, SK텔레콤 등이 분투하고 있으나 글로벌 빅테크처럼 칩을 대규모로 소화해 줄 전방 수요처가 턱없이 부족하다. 기술 커뮤니티와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KISTEP) 등에서 “칩 설계사에 8000억원을 주는 것보다 국산 칩을 구매하는 데이터센터에 보조금을 주거나 공공 인프라를 확대해 ‘살아있는 수요’를 만드는 게 우선”이라는 비판이 반복되는 이유다. 엔진 개발에만 몰두하고 고속도로와 주유소는 짓지 않는 전형적인 공급자 중심 행정이라는 지적이다.
‘오락가락’ 기술 딜레마와 거시적 리스크
기술의 ‘방향성’에 대한 딜레마도 존재한다. 반도체 전문 조사기관 욜 인텔리전스(Yole Intelligence)에 따르면 퓨리오사는 그동안 저전력·가성비를 강점으로 내세우는 ‘추론(Inference)’ 데이터센터 시장을 타깃으로 삼아 왔다. 이후 사실상 칩 판매 부진으로 매출 절벽에 직면하자 엣지 AI칩을 개발하겠다고도 했다. 그러나 이번 정부 지원의 핵심 명분은 고대역폭메모리인 ‘HBM4 기반 차세대 칩 개발’이다. HBM4는 엔비디아 ‘학습(Training)’용 초거대 AI 칩에나 들어가는 초고가 칩이다. 가성비 추론 칩을 만들겠다던 스타트업이 정부 지원 스펙을 맞추기 위해 고가 메모리를 탑재했을 때, 과연 시장에서 엔비디아 차세대 GPU와 상위 추론 칩 경쟁자들을 상대로 가격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겠느냐는 기술적 의구심(Over-engineering)이 제기된다.
결국 이번 퓨리오사AI에 대한 8000억원 투입은 AI 패권 시대에 국가가 어디까지 개입하고 자원을 배분해야 하는가에 대한 거대한 시험대다. 미·중 패권 경쟁 속에서 반도체 주권을 지키기 위한 방어선이라는 찬성론도 존재하지만, 글로벌 테크 및 안보 분야 리포트들의 경고는 엄중하다. 철저한 시장 검증과 전방 생태계 조성 없이 정치적 이정표와 관료적 기획만으로 밀어붙인 투자가 실패할 경우, 이는 단지 한 스타트업의 파산을 넘어 한국형 국가 자본주의 산업 정책의 치명적인 종말로 기록될 위험이 크다.
편집장/ Editor-in-Chief
국가 안보 정책과 연계된 과학기술 분야 혁신 등 영향력 있는 분석을 생산하고 있다. 주로 핵심 과학기술 연구, 글로벌 안보, 지정학, 해양 전략을 주제로 집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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